요하네스 브람스 클라리넷 오중주 B minor Op. 115 / Johannes Brahms Clarinet Quintet in B minor, Op. 115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는 19세기 실내악에 있어서 절대음악의 전통성과 순수성을 고수한 작곡가이며, 브람스가 작곡한 기악, 성악 쟝르 중 하나만을 남기라면 그것은 실내악이 될 것이다.
그의 실내악곡들은 한 곡 한 곡 모두 순수 기악 음악의 절대성을 성취하고 있다.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피아노 삼중주, 호른 삼중주, 피아노 사중주, 현악 사중주, 피아노 오중주, 현악 육중주 그리고 클라니넷 오중주 모두 뛰어난 주옥같은 명곡들이다.
그 중에서 브람스의 클라니넷 오중주(퀸텟)는 지금까지 작곡된 서양 실내음악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가장 심오한 실내악 작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탁월한 연주자들은 작곡가들에게 직접적인 작곡의 영감을 주는데, 클라리넷으로 한정하자면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안톤 슈타틀러 Anton Stadler (1752-1812), 베버에게 있어서 하인리히 바에르만 Heinrich Baermann (1784-1847), 그리고 브람스에 있어서 리하르트 뮐펠트 Richard Mühlfeld (1856-1907)이다.

리하르트 뮐펠트


당대의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들과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적 교감과 협업은 가장 뛰어난 클라리넷 오중주와 실내악 그리고 협주곡을 남겼다.
1890년 브람스가 57세 때 현악오중주 2번을 끝으로 브람스는 자신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소진하고 작곡을 그만 두게 되었는데, 1891년 마이닝겐 궁전에서 브람스는 뮐펠트의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과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 탄복을 하였다고 하며, 그의 클라리넷 음색에 정신을 잃을 뻔 했다고 한다.
뮐펠트와의 만남은 음악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자극하였으며, 클라리넷 곡을 위한 창작열을 불태웠다. 브람스는 1891년 클라리넷 삼중주, 클라리넷 오중주를 이어서 작곡했으며, 3년 후 2곡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완성했다.
그리고 덧붙혀야 할 것은 뛰어난 연주자의 등장 뿐만 아니라 악기의 개량 또한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관악기의 경우 바로크, 고전파 시대 이후 낭만파 시대를 지나면서 매우 많이 개량이 되었는데, 클라리넷의 경우도 연주 음역대의 확대 뿐만 아니라 소리의 강약을 더욱 쉽게 낼 수 있게 개량이 되었으며 음색 또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곡은 듣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여정을 펼쳐준다. 브람스 말년에 삶과 음악을 관조(觀照)하는 그의 원숙한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말년의 인생을 통한 아름다움, 깊은 성찰, 그리움, 우울한 여정, 체관의 감정을 클라리넷을 통해 토로한다.
현악기들의 음색과 클라리넷의 음색은 절묘하며 감정은 음악적으로 깊게 표현되며, 브람스 말년의 원숙한 음악적 기법은 너무나도 탁월하다.
늦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지만, 오늘 같이 비오는 늦 봄에도 잘 어울리는 곡이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빠르게) Allegro in B minor
제1악장이 B 단조인지, D 장조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이 곡에서 놀라운 점은 단조 모드에서 장조 모드로의 지속적인 슬라이딩이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오중주처럼 제1악장도 현의 도입부로 시작되며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바이올린의 제1주제를 클라리넷이 반복하며 시작되며, 제1주제는 전악장에 통일성을 부여하며 4악장에서 전곡을 마무리한다.

제1악장



제2악장 - 아다지오(매우 느리게) Adagio in B major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과 함께 가장 사랑하는 악장이다.
브람스가 이 곡을 작곡하기 전 헝가리 여행을 했던 경험인지, 명맥히 집시풍이다.
크게 3부작으로 나눌 수 있다.
현악기의 약음을 배경으로 클라리넷의 선율은 마치 초기 불교 경전 '숫파니파타'의 한구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내면적인 깊은 감정, 우울감, 회상 그러나 때로는 거칠면서 한없이 자유롭게 클라리넷은 노래한다.

제2악장



제3악장 - 안단티노, 프레스토 논 아사이 마 콘 센티멘토 Andantino, Presto no asai, ma con snetimento
가장 짧은 악장이며, 안단티노 (조금 느리게)는 미뉴에트와 렌틀러풍(8분의 3박자나 4분의 3박자의 비교적 느린 템포의 춤. 18-19세기 독일남부, 오스트리아에서 성행한 춤곡 형태)이 섞여있으며, 프레스토 논 아사이 마 콘 센티멘토 (감정을 갖고서 매우 빠르게 보다는 느리게)는 스케르초이다.
클라리넷이 부드러우면서 느린 주제를 연주하고 이어 바이올린이 스케르초풍의 선율을 연주한다.
그후 악상은 고조되며 이윽고 조용하게 끝맺는다.

제3악장



제4악장 - 콘 모토(활기있게) , 운 포코 메노모소(다소 빠르지 않게) Con moto, Un poco menomosso
제4악장은 주제와 5개의 변주로 이루어지며, 민요적인 주제를 변주해 가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제1악장의 제1주제로 돌아와서 곡을 마무리시킨다.
변주는 대위법적이며, 제3변주와 제5변주는 명확히 주제를 갖고 있다.
코다(종결부)에서는 급격하고도 격하게 끝날 것 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침잠(沈潛) 속에 종결짓는다.

제4악장



이 작품이 워낙 걸작이라 녹음도 무척 많은데, 칼 라이스터와 아마데우스 현악사중주단, 다비드 오펜하임과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주단, 시아 킹과 가브리엘리 현악사중주단의 음반을 최고로 꼽을 수 있다.

https://youtu.be/DOzEgxUJMG4

Johannes Brahms Quintet for Clarinet & String Q. in B minor Op.115, Karl Leister/Amadeus Quartet

칼 라이스터와 아마데우스 현악사중주단

칼 라이스터와 아마데우스 현악사중주단
다비드 오펜하임과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주단
시아 킹과 가브리엘리 현악사중주단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라단조 Op. 47 / Dmitiri Shostakovitch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

 

이 교향곡은 그의 15개 교향곡 중 제7번 ‘레닌그라드’와 함께 가장 유명하며, 그의 교향곡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이 교향곡을 들을 때 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말러의 교향곡 5번과의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 베토벤이나 말러가 개인 (혹은 확장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승리를 확신했다면, 이 곡은 폭압적이고 전제적인 소비에트 스탈린주의에 대한 개인과 예술의 승리를 확신했다는 생각이 든다.(이 부분에 있어서 개인적인 판단은 작곡가들에 대한 전기와 음악적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
1928년 스탈린이 제1차 5개년을 시작하면서 스탈린주의가 지배한 그당시 소비에트 문화는 철저히 통제 되었으며, 인민들이 사실적인 예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공산체제 선전을 위해 사실적인 예술 운동 즉 사회주의 사실주의( Socialist realism) 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이 당시 재즈, 전위음악은 서구적 자본주의의 부패음악으로서 추방되었으며, 심지어 무소르크스키, 보로딘과 더블어 슬라브주의에 바탕을 두었지만 서구적 음악기법을 사용한 차이콥스키의 음악조차도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운동은 쇼스타코비치에게도 빗겨갈 수 없는 운명이었는데,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과 그의 발레음악 ‘맑은 시냇물’2개의 작품이 서구적 자본주의 형식에 물들은 형식적인 작품이라고 신랄하게 매도 되었다. 특히 1936년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관람한 스탈린은 매우 분노했었다. 오페라의 내용이 불륜으로 인해 남편을 살해하고 유형지에서 연적의 여자 죄수와 자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노한 스탈린에 의해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드에 의해서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적’으로 낙인이 찍였다.
스탈린의 구소련의 정치,경제,문화, 예술에 대한 공포스러운 탄압은 그의 자의성 덕분에 특히 효과적이었는데 과학자부터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유 사상가는 하루 아침에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쇼스타코비치 또한 스탈린주의의 폭력성에 대한 공포에 질려있었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1937 년 4 월 교향곡 5 번 작업을 시작했을 때 그에 대한 위협은 절정에 달했었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삼촌과 처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여동생 마리야는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이러한 공포스러운 분위기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염세적이며 고독한 분위기의 그의 교향곡 4번을 포기하고, 자아비판을 통해 1937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반영된 그의 제 5번 교향곡을 발표한다.

 

이 교향곡의 발표는  1937년 11월 21일에 므라빈스키의 지휘 레닌그라드 필의 초연으로 이루어졌는데, 암울하고 비극적인 (특히 1악장과 3악장)에 대해 당당한 행진으로 승리하는 마지막 악장으로 인해 전에 없던 환호를 받았다. 연주가 끝났음에도 객석에서는 30분간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으며,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소등한 다음에야 조용해 졌다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에 대해 쇼스타코비치는 ‘당국에 대한 한 소련 예술가의 응답’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소비에트 당국은 소비에트 볼세비키 혁명을 찬양한 음악이라고 인정했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극치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후에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의 앞부분에 대한 어두움은 스탈린 체제하의 인민들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밝혔듯이 이 교향곡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충실한 곡이 아닌 스탈린주의에 대한 고발이자 조롱이며 반항인 것이다. 또한 힘없는 한 예술가가 거대하고 폭력적인 전체주의적 권력에 맞선 예술과 본인 생명에 대한 외줄타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 교향곡은 모든 정치적인 요소를 고려해도 예술적으로 너무나도 탁월하다.

첼로의 거장 로스트포비치는 회고록에서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거울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만일 그가 말이나 언어로 이를 표현했더라면 바로 숙청을 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은 추상적인 예술이다. 특히 바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당시 소련 당국은 완전한 바보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라는 이상적인 이론 속에서 고통을 당하던 우리들에게는 오히려 음악의 추상성이 더욱 생생한 현실을 묘사해 주게 된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한때 서구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타협한 작곡가로서 비난을 받았지만, 그것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스탈린 사회에서 생존과도 직결된 힘없는 예술가의 외줄타기 였으며, 당에 찍히면 다음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공포에 짓눌린 상황을 이해한다면 그 누가 그에게 정치적 견해로 비난을 할 수가 있을까? 또한 매카시즘이 자리잡고 있던 한국의 1980년대까지 쇼스타코비치와 그의 음악이 금기시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폭력적인 정치권력 보다는 예술의 생명은 길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리고 이 교향곡 5번은 베토벤의 위대한 교향곡 제 5번의 20세기 버전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제1악장 : Moderato-Allegro non troppo-Moderato
베토벤과 말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악장이며, 처음부터  매우 느리고 어두우며 공포감이 스며든다. 이런한 분위기에 갑작스러운 알레그로(빠르게)는 급박한 긴장감을 도입하는데 호른과 트럼펫의 기묘한 멜로디에 저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의 리듬은 군복을 입은 권력의 행진을 느끼게 해준다. 솔로바이올린의 슬픈 멜로디와 첼레스트타의 상승하는 마지막 부분은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느낌을 받는다.

제2악장 : Allegretto
당대의 비평가들에 의해서 2악장은 말러풍의 왈츠와 유사하다고 지적 받는다.
1악장의 분위기와 다른 흥겹고 즐거운 멜로디와 리듬으로 시작된다. 1악장이 어둡고 비극적인 선율에서 비극적인 행진곡풍의 선율로 진행이 되었다면, 2악장은 흥겨운 무곡 분위기에서 갑작스러운 행진곡풍으로 마무리된다.

제3악장 : Largo
특히 이3악장은 현악기의 섬세한 표현이 뛰어난다. 그의 교향곡 중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악장 또한 매우 어두운 분위기다. 시간이 흐르며 첼로 파트의 깊고 격한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지나 격한 감정은 소멸해간다.

제4악장 : Allegro non troppo
목관악기, 금관악기 그리고 팀파니로 개시하는 이 악장은 충격적이며, 베토벤의 음악적인 승리의 악장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인민의 승리라고 착각했겠지만, 쇼스타코비치에게는 스탈린주의 대한 인민의 승리를 희망한 악장이다. 추상적인 음악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게 할 수도 있는 마음의 씨앗을 품게 할 수 있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youtu.be/9fCmbe55Ykc

Shostakovich - Symphony n°5 - Leningrad / Mravinsky 1982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명연주 명반들은 다음과 같이 꼽고 싶다.
우선 므라빈스키 지휘 레닌그라드필의 1984년 녹음은 바이블이다. 그는 4번 녹음했는데, 1984년 녹음이 ( ERATO 레이블)이 최고의 명반으로 선택할 수 있다.

 

 

 



레너드 번슈타인 지휘 뉴욕필 ,
번슈타인 답게 매우 자유로우면서 극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템포를 느리게 가지고 가는데, 쇼스타코비치도 이 해석에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지휘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
번슈타인과 함께 서구에 쇼스타코비치를 소개한 뛰어난 지휘자로 번슈타인 해석 보다는 중립적이고 견실한 연주를 들려준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나단조 (Op. 23) / Pyotr Ilyich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1 in B♭ minor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나단조 Op. 23 (B-flat Minor, Op. 23)은 슈만,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함께 가장 뛰어난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 중 한 곡이며, 개인적으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도입부와 함께 가장 인상적인 도입부를 갖고있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인기가 많은 피아노 협주곡인데, 얼마나 인기가 많은 곡인가하면 SP시대 이후 현재까지 녹음된 음반만 하더라도 150종이 넘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곡이다. 클래식 레퍼토리 전체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작품 TOP 10에 들어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이 든다.

이 피아노 협주곡은 러시아 작곡가가 작곡한 작품으로는 러시아가 아닌 외국(1875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한 최초의 작품이며, 보스턴에서의 즉각적인 성공 후 그 이후로 현재까지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에게 매우 중요한 래퍼토리가 되었으며, 영화 The Simpsons , Mad Men등 수많은 영화에 삽입이 되었고 팝 문화에도 침투한 유명한 클래식 곡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공연은 냉전의 절정기인 1958년 제1회 국제 차이콥스키 공쿨에서의 미국의 피아니스트 Van Cliburn의 마지막 라운드 결선 연주일 것 이다.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자국의 위대한 작곡가를 기리는 콩쿨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미국의 24세 불과한 젊은이가 배심원 채점에서 1위에 올랐는데 그때는 미국과 소비에트(구소련)는 마치 불구대천지 원수 같은 사이라서 미국인 반 클라이번에게 우승 트로피를 주기 위해서는 그 당시 소련의 지도자 후르시초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그 당시 미국에서는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모든 언론에서는 대서특필 되었으며, 그의 귀국 카 퍼래이드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그의 업적을 기려 1962년부터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콩쿠르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시에서 반 클라이번 재단 주최로 4년마다 열리고 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는 우랄지방의 외딴 시골 캄스코보스킨스크의 광산촌 숙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일리야 페트로비치(1795 - 1880)는 우크라이나계의 정부 탄광 공학자였고,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일부 프랑스계였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5살에 음악교육을 시작했고 14살에 이르러서는 피아노 즉흥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러시아에서 태어 났지만 독일에서 교육 받은 두 형제인 안톤 루빈슈타인과 니콜라이 루빈슈타인 이었다. 작곡가 였던 안톤 루빈슈타인에게는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을 그리고 모스코바 음악원 최초의 원장이자 뛰어난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서는 차이콥스키에게 재정적 지원과 음악 교수의 자리를 제공했으며, 차이콥스키에게 작곡에 대한 조언과 견해를 제공하였다.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나단조(Op. 23)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가 1874년부터 1875년의 겨울에 걸쳐서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으로, 애초에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감독이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헌정할려고 했었다고 한다. 1874년 겨울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악보를 보여주었는데 루빈슈타인은 피아노 연주 후 이 피아노 협주곡을 "진부하고, 촌스럽고, 부적당하다" "연주할 수도 없을 만큼 빈약한" 곡이라고 혹평했고 대대적인 개작을 요구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크게 낙담을 하였으나, 루빈슈타인의 요구에 일체 대응을 하지 않고,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독일인 한스 폰 뷜로에게 초연을 요청했으며 뵐로는 마침 미국 연주 여행을 계획했던터라 1875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을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곡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러시아에서는 일주일 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피아노 연주가 구스타프 크로스와 체코인 지휘자인 에듀아르드 나프라프니크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피아노 협주곡은 뵐로에게 헌정되었으며, 3년 후 루빈슈타인은 자신의 의견없이 독자적으로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에 대한 자신의 혹평을 거두어들였으며, 두 사람간의 관계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에게 단 하나의 음표도 바꿀 수 없다고 맞섰던 차이콥스키지만 15년 후에 피아노의 기교적인 부분을 수정하였다. 지금 듣는 도입부의 묵직한 피아노의 화음은 원래는 아르페지오(분산화음)이었으며, 다양한 빠르기의 지시도 추가되었으며, 단순하고 직선적인 피아노 파트도 오늘날 우리가 듣는 극적이며 화려하게 수정이 되었다.

 

youtu.be/0jdAr6nIDM8

Tchaikovsky / Richter / Von Karajan, 1962: 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1악장 -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 Allegro con spirito

 

서주가 포함된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내림라 장조의 서정과 열정을 테마로 4박자 내림나단조 화음으로 시작된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의 동기와 같은 이 도입부는 너무나도 유명하며 한번 들으면 각인이 된다. 피아노의 화음 위로 들리는 현악 파트의 유명한 주제부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근처 카멘카에 있는 시장에서 들었던 맹인 노변 음악가들의 연주에서 기반한 것이다. 아쉽게도 이 아름다운 주제는 2번 반복하며 악장이 끝날 때 까지 출현하지 않는다. 이 후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각각 주제를 제시하며 전개, 재현부를 거쳐 카뗀짜가 나오며, 코다에 돌입하여 화려하게 결말을 맺는다.

제  1 악장 도입부

 

 

 

2악장 - Andantino semplice – Prestissimo – Tempo I (내림라장조)

프랑스 민요에 기반한 2악장은 오프닝 멜로디에 플루트는 약간 백조처럼 들리는 반면 현악기의 피치카토 반주는 물처럼 들려준다. 플루트의 악상을 피아노가 이어받으며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고, 1악장과는 다른 대조를 제공한다.

 

제  2 악장 도입부

 

3악장 - Allegro con fuoco (내림나단조내림나장조)

이 악장은 론도 형식이며, 봄을 노래하는 우크라이나의 농민 춤곡에서 따왔다. 피아노의 화려하면서 매우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악장이다.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는 피아노의 엄청난 옥타브 스케일 이후 전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2주제를 연주하여 극적인 연출을 한다. 마치 러시아 대평원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폭풍우 처럼 피아노와 관현악의 강렬한 협주로 끝난다.

 

 

제  3 악장 도입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이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스케일과 힘을 필요로 하기에 여류 피아니스트 아르헤리치와 니콜라예바를 제외하면 대부분 남성연주자들의 연주가 뛰어나며 특히 러시아 출신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최고로 생각된다.

너무나도 훌륭한 연주들이 많기에 개인적으로 몇 개의 명반을 뽑아 보자면,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지휘)  NBC 심포니/ 반 클라이번과 키릴 콘드라신(지휘) RCA심포니/ 에밀 길렐스와 로린 마젤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와 아쉬케나지 (지휘) 베를린 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드미트리 키타엔코(지휘)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외에도 많다. 참 아르헤리치와 뒤트와 협연도 최고이다.

반 클라이번과 키릴 콘드라신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35 P. I.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뽑으라면 아마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선정될 듯하다.

또한 큰 규모의 바이올린 협주곡 감상 입문 시 자주 추천되는 아주 멋진 작품이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차이콥스키의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린 독주의 현란함과 함께 풍부한 관현악의 선율과 동시에 러시아 민요에서 풍기는 특유의 애수에 젖은 선율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곡이다. 이 협주곡은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이며, 음악적으로도 위대한 협주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훌륭한 곡이다.

재밌는 것은 멘델스존의 협주곡(E-minor 마단조)만 제외한다면,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조성이 D-major(라장조) 이고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은 D-minor(라단조)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D-major나 D-minor의 조성에서 가장 울림이 풍부하며 아름답다.

그것은 바이올린 현 4개 중 2개의 개방현이 각각 D현과 A현이기 때문인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곡의 창작동기는 1878년 차이콥스키를 방문했던 차이콥스키와 요하임의 제자인 요지프 코테크 (Yosif Kotek)가 소개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5악장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곡 또한 D-minor의 조성을 갖고 있다.)이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진 이 곡에 대해 신선함을 느꼈고 이것은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창작 동기를 불태웠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그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아내 안토니나 이바노브나 밀류코바(Antonina Ivanovna Milyukova)와의 비참한 결혼생활로부터 온 우울증을 회복하기 위해 갔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중 스위스 제네바 호수 연안의 클라렌스 리조트에서 작곡되었다

 

 

차이콥스키와 밀류코바

 

 

차이콥스키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이올린 솔로 부분은 코테크의 도움으로 한 달이라는 빠른 시간안에 작곡하였다.

이 곡을 위한 초연자 관계도 우여곡절이 많은데, Alexander Poznansky의 저서 Tchaikovsky : The Quest for the Inner Man에 의하면 차이콥스키와 코테크와의 관계는 한때 거의 확실히 연인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항상 일반 대중으로부터 그의 동성애를 위장하기 위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1881년 코테크는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거부하자 차이콥스키는 코테크와 헤어졌다. 단지 초연 거부에 따른 헤어짐이 아닌 앞날이 많이 남아있는 코테크에 대한 배려였다.

몇년 후에 차이콥스키는 그를 위해 Valse-Scherzo (왈츠-스케르초)를 헌정했다.

 

차이콥스키(우)와 코테크(좌)

 

그리하여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레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에게 초연을 부탁하고 헌정하려고 하였으나, 아우어는 이 곡은 연주불가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테크닉적인 부분인지 아니면 이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대부분 테크닉적으로 어려워서 불가했다고 주장하지만,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보다도 테크닉적으로 더 어려운 협주곡(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비예니압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비추면, 기술적 난이도 때문에 연주 불가했다는 주장은 뭔가 의문이 간다.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지금은 뛰어난 소수의 어린 연주자의 경우 중,고등학생 나이에도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이 곡은 결국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에 의해 1881년 12월 4일에 초연되었다.

물론 이 곡의 초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당시 빈 음악계를 주름잡던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음악이 이토록 심한 악취를 풍길 수 있다는 사실을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증명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브로드스키는 이에 굴하지 않고, 1882년 4월 런던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다시 협연함으로써 거대한 성공의 서막을 열었다.

그 후 이 뛰어난 바이올린 협주곡은 가장 사랑 받는 협주곡 중의 한 곡이 되었으며,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비롯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연주자의 기량을 평가하는 표준 협주곡 중의 하나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 연주자가 도전하며 음반을 내는 곡이 되었다.

 

 

 

1악장 - Allegro moderato

매우 아름다운 서정미와 함께 폭팔적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빛나는 아주 멋진 악장이다.

D mjor로 도입되며, 소나타 형식이다.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후 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는 매우 인상적인 주제이며, 뒤에 트럼팻에 맞추어 관현악이 멋있게 반복 연주된다.

이 주제를 기억한다면 이 협주곡에 대한 감상의 이해가 쉬워진다. A major의 차분한 두번째 주제가 도입되며, 분위기는 점차 강화되며, 카덴짜에 다다른다.

고전적인 협주곡에서는 작곡가가 솔로 바이올린 연주자를 위해 특별히 제시하지 않았으나, 낭만주의 협주곡을 거치면서 작곡가는 카덴짜를 직접 작곡한다.

카덴짜 이후 다시 메인 D major의 주제가 나타나며, 바이올린과 관현악은 빠른 속도로 장엄한 절정을 향해 진행한다.

 

제1악장 도입부와 주제

 

 

2악장 - Canzonetta Andante

관악기의 서주가 흐른 후 서정적인 주제를 바이올린이 노래하는데, 칸쪼네타(작은 노래라는 뜻. 칸초네(노래)에 축소접미사가 결합됨)라고 지시되어 있듯이 바이올린은 마치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 부르듯이 연주한다.

전체적으로 우수에 찬 슬라브적인 서정성이 돋보이는 악장이다.

 

제2악장 도입부와 주제

 

 

3악장 - Finale Allegro Vivacissimo

조용하고 우수에 찬 2악장과 대비되는 3악장은 오케스트라의 도입 후  바이올린 G현으로 연주가 시작되며, 3악장의 멜로디와 리듬은 전적으로 슬라브적이다.

매우 빠르고 경쾌함과 우울함 그리고 감정의 폭팔과 감정의 탄식이 교차하고 있는 악장이다.

구조적으로는 D-major의 활발한 제1주제 -> A-major의 보다 차분한 주제 -> F-major의 제 1 주제로 다시 돌아가며 G-major의 두번째 주제 변형 후 D-major의 매우 기교적인 코다로 이어져 화려하면서 폭팔적인 에너지를 갖고서 곡이 종결된다.

 

제3악장 도입부와 주제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적으로도 쉽지 않으며, 섬세한 감정 조절 뿐만 아니라 강력한 남성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류 연주자 보다는 남성 연주자들의 명연주가 압도적인 곡 이다. 그리고 남성 연주자들 중에서도 러시아 아우어학파의 연주자들의 연주가 압도적이다.

여류 연주자 중에서는 정경화, 율리아 피셔, 빅토리아 뮬로바의 연주만이 남성 명연주자와 견줄 수 있다.

이 곡의 명연주와 명반은 매우 많은데,그도 그럴것이 모든 전문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데뷔 후 음반 녹음을 하면서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본적으로 녹음하기 때문일 것이다. 후버만에서 피셔까지 명연주 명반은 열개도 넘개 꼽을 수 있다.

 

브로니슬라프 후버만, 야샤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 나탄 밀슈타인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 아이작 스턴, 이처크 펄먼, 크리스티앙 페라스, 기돈 크레머, 정경화, 율리아 피셔.....

 

어느 연주자의 음반을 선택하던 후회는 없지만,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연주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강철과도 같은 음색,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일관 유지되는 팽팽한 긴장감, 완벽에 가장 가까웠던 테크닉 (1악장 제1 주제 이후 다른 연주자들의 아르페지오 부분을 그는 옥타브 더블스톱으로 연주하는 부분과 피날레에서의 스피드와 정확성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래 유튜브 영상 5:08초 부분)!
다른 연주자는 그 부분을 더블악셀로 뛰지만 하이페츠는 마치 쿼드로플 살코에 바로 더블악셀 컴비네이션으로 뛰는 느낌이다. 그것도 GOE +5 받으면서...

완벽에 가장 가까웠던 연주자!

 

 

야샤 하이페츠, 프리츠 라이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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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cha Heifetz plays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I. Allegro moderato 제1악장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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