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35 P. I.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뽑으라면 아마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선정될 듯하다.
또한 큰 규모의 바이올린 협주곡 감상 입문 시 자주 추천되는 아주 멋진 작품이다.

차이콥스키의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린 독주의 현란함과 함께 풍부한 관현악의 선율과 동시에 러시아 민요에서 풍기는 특유의 애수에 젖은 선율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곡이다. 이 협주곡은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이며, 음악적으로도 위대한 협주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훌륭한 곡이다.
재밌는 것은 멘델스존의 협주곡(E-minor 마단조)만 제외한다면,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조성이 D-major(라장조) 이고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은 D-minor(라단조)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D-major나 D-minor의 조성에서 가장 울림이 풍부하며 아름답다.
그것은 바이올린 현 4개 중 2개의 개방현이 각각 D현과 A현이기 때문인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곡의 창작동기는 1878년 차이콥스키를 방문했던 차이콥스키와 요하임의 제자인 요지프 코테크 (Yosif Kotek)가 소개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5악장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곡 또한 D-minor의 조성을 갖고 있다.)이었다고 한다.
차이콥스키는 스페인풍의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진 이 곡에 대해 신선함을 느꼈고 이것은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창작 동기를 불태웠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그의 동성애 성향으로 인한 아내 안토니나 이바노브나 밀류코바(Antonina Ivanovna Milyukova)와의 비참한 결혼생활로부터 온 우울증을 회복하기 위해 갔던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에서 요양생활을 하던 중 스위스 제네바 호수 연안의 클라렌스 리조트에서 작곡되었다

차이콥스키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바이올린 솔로 부분은 코테크의 도움으로 한 달이라는 빠른 시간안에 작곡하였다.
이 곡을 위한 초연자 관계도 우여곡절이 많은데, Alexander Poznansky의 저서 Tchaikovsky : The Quest for the Inner Man에 의하면 차이콥스키와 코테크와의 관계는 한때 거의 확실히 연인이었고, 차이코프스키는 항상 일반 대중으로부터 그의 동성애를 위장하기 위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1881년 코테크는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거부하자 차이콥스키는 코테크와 헤어졌다. 단지 초연 거부에 따른 헤어짐이 아닌 앞날이 많이 남아있는 코테크에 대한 배려였다.
몇년 후에 차이콥스키는 그를 위해 Valse-Scherzo (왈츠-스케르초)를 헌정했다.

그리하여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레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에게 초연을 부탁하고 헌정하려고 하였으나, 아우어는 이 곡은 연주불가라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테크닉적인 부분인지 아니면 이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대부분 테크닉적으로 어려워서 불가했다고 주장하지만,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보다도 테크닉적으로 더 어려운 협주곡(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비예니압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비추면, 기술적 난이도 때문에 연주 불가했다는 주장은 뭔가 의문이 간다.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지금은 뛰어난 소수의 어린 연주자의 경우 중,고등학생 나이에도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이 곡은 결국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에 의해 1881년 12월 4일에 초연되었다.
물론 이 곡의 초연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당시 빈 음악계를 주름잡던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는 “음악이 이토록 심한 악취를 풍길 수 있다는 사실을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증명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브로드스키는 이에 굴하지 않고, 1882년 4월 런던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다시 협연함으로써 거대한 성공의 서막을 열었다.
그 후 이 뛰어난 바이올린 협주곡은 가장 사랑 받는 협주곡 중의 한 곡이 되었으며,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비롯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연주자의 기량을 평가하는 표준 협주곡 중의 하나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 연주자가 도전하며 음반을 내는 곡이 되었다.
1악장 - Allegro moderato
매우 아름다운 서정미와 함께 폭팔적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빛나는 아주 멋진 악장이다.
D mjor로 도입되며, 소나타 형식이다.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후 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는 매우 인상적인 주제이며, 뒤에 트럼팻에 맞추어 관현악이 멋있게 반복 연주된다.
이 주제를 기억한다면 이 협주곡에 대한 감상의 이해가 쉬워진다. A major의 차분한 두번째 주제가 도입되며, 분위기는 점차 강화되며, 카덴짜에 다다른다.
고전적인 협주곡에서는 작곡가가 솔로 바이올린 연주자를 위해 특별히 제시하지 않았으나, 낭만주의 협주곡을 거치면서 작곡가는 카덴짜를 직접 작곡한다.
카덴짜 이후 다시 메인 D major의 주제가 나타나며, 바이올린과 관현악은 빠른 속도로 장엄한 절정을 향해 진행한다.

2악장 - Canzonetta Andante
관악기의 서주가 흐른 후 서정적인 주제를 바이올린이 노래하는데, 칸쪼네타(작은 노래라는 뜻. 칸초네(노래)에 축소접미사가 결합됨)라고 지시되어 있듯이 바이올린은 마치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 부르듯이 연주한다.
전체적으로 우수에 찬 슬라브적인 서정성이 돋보이는 악장이다.

3악장 - Finale Allegro Vivacissimo
조용하고 우수에 찬 2악장과 대비되는 3악장은 오케스트라의 도입 후 바이올린 G현으로 연주가 시작되며, 3악장의 멜로디와 리듬은 전적으로 슬라브적이다.
매우 빠르고 경쾌함과 우울함 그리고 감정의 폭팔과 감정의 탄식이 교차하고 있는 악장이다.
구조적으로는 D-major의 활발한 제1주제 -> A-major의 보다 차분한 주제 -> F-major의 제 1 주제로 다시 돌아가며 G-major의 두번째 주제 변형 후 D-major의 매우 기교적인 코다로 이어져 화려하면서 폭팔적인 에너지를 갖고서 곡이 종결된다.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적으로도 쉽지 않으며, 섬세한 감정 조절 뿐만 아니라 강력한 남성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류 연주자 보다는 남성 연주자들의 명연주가 압도적인 곡 이다. 그리고 남성 연주자들 중에서도 러시아 아우어학파의 연주자들의 연주가 압도적이다.
여류 연주자 중에서는 정경화, 율리아 피셔, 빅토리아 뮬로바의 연주만이 남성 명연주자와 견줄 수 있다.
이 곡의 명연주와 명반은 매우 많은데,그도 그럴것이 모든 전문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데뷔 후 음반 녹음을 하면서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본적으로 녹음하기 때문일 것이다. 후버만에서 피셔까지 명연주 명반은 열개도 넘개 꼽을 수 있다.
브로니슬라프 후버만, 야샤 하이페츠,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 나탄 밀슈타인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 아이작 스턴, 이처크 펄먼, 크리스티앙 페라스, 기돈 크레머, 정경화, 율리아 피셔.....
어느 연주자의 음반을 선택하던 후회는 없지만,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연주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강철과도 같은 음색,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일관 유지되는 팽팽한 긴장감, 완벽에 가장 가까웠던 테크닉 (1악장 제1 주제 이후 다른 연주자들의 아르페지오 부분을 그는 옥타브 더블스톱으로 연주하는 부분과 피날레에서의 스피드와 정확성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래 유튜브 영상 5:08초 부분)!
다른 연주자는 그 부분을 더블악셀로 뛰지만 하이페츠는 마치 쿼드로플 살코에 바로 더블악셀 컴비네이션으로 뛰는 느낌이다. 그것도 GOE +5 받으면서...
완벽에 가장 가까웠던 연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