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Tchaikovsky,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Pathétique
"여행 도중에 새로운 교향곡의 구상이 마음에 떠올랐다. 이 번의 새 교향곡은 표제가 있는데, 그 표제라는 것은 만인에게 수수께끼가 된다.
이 표제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으로 나는 여행 도중에 머릿속에서 작곡하면서 몇 번이나 울었다"
라고 차이콥스키는 조카인 다비도프에게 부친 편지에 위와 같이 썼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의 마지막으로 작곡한 제 6번 교향곡은 1893년 그가 사망하기 9일 전에 초연되었다.
차이콥스키의 말에 따르면 “과장 없이, 모든 영혼을 이 작품에 쏟아 넣었다”다고 한다.
비창이라는 제목은 초연 뒤에 아우인 모데스트와 의논해서 결정된 것으로 모데스트의 제안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차이콥스키는 이 이름을 좋아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결국 이 이름이 붙은채로 출판되었다.
이 교향곡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 있어서 언제나 이 교향곡과 차이콥스키의 죽음과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전에는 6번 교향곡 초연 후 콜레라에 감염되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으나, 1979년 러시아의 음악학자 알렉산드라 올로바Alexandra Orlova가 제시한 증거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전혀 새롭게 구성된다.
가장 중요한 증거는 당시 러시아의 공작 스텐보크 페르모르가 자신의 조카와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인 관계라고 차르(황제)에게 직접 고발했다는 기록이다.
당시 러시아 검찰 부총장은 1893년 10월 30일 자신의 서재에서 8명으로 구성된 이른바 ‘명예 법정’이라는 이름의 비밀 법정을 열었고, 여기서 재판관들은 다섯 시간이 넘도록 격론을 벌인 끝에 자살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한편 음악학자 알렉산더 포즈난스키는 차르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시 고위 관리의 다수를 차지한 제국법률학교 출신들이 모교와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직접 비밀 법정을 열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증언에 의하면, 초연 직전 리허설을 지켜보았던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은 그가 평소와 달리 지휘봉을 휘두르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다.
아무리 소리가 서서히 잦아드는 4악장 부분이라지만 아예 지휘봉을 내려놓고 고개까지 푹 숙인 채 꼼짝하지 않는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는 것이다.
대공은 그래서 ‘아, 이 곡은 그의 레퀴엠이다!’라고 직감했다고 한다.
현재는 명예재판의 결과로 음독자살을 택했다는 설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콜레라설은 당시 러시아의 역사적인 상황과 맞지도 않다.)
왜 이 교향곡이 표제적인 내용을 갖고 있고 형식도 고전 교향곡의 형식에서 벗어났는지 이 비극적인 사건이 열쇠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2 악장이 느리지 않고 빠른점, 제3 악장이 전통적인 3박자 형식이 아닌 4박자의 행진곡적인 리듬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4악장은 왜 이리도 느리고 어둡게 사라져 가는지.....
그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자 서양음악 교향곡 부분에서 최고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작품의 열쇠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노래인 것이며 진혼곡인 것이다.
제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논 트로포(Adagio - Allegro Non Troppo)는 서주가 있는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바순의 다소 음산한 낮은 음으로 시작해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가 고조된 후 평온하게 마무리된다.
러시아 정교회의 진혼곡 선율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내가 던진 이 꽃은〉의 일부가 차용되었다.
특히 지극히 아름다운 아래 제2 주제 선율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비밀이 있다.
이 선율은 제1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제1 바이올린 파트와 제2 바이올린 파트가 나눠서 연주한다.
각각 제1 바이올린 파트만, 제2 바이올린 파트만 격리해서 이 선율을 연주하면 다른 선율로 들린다. 동시에 연주할 때만 악보와 같은 선율이 나온다.
만약 연주회에 가게 되면 앞자리에서 귀기울여 제1 바이올린 파트와 제2 바이올린 파트가 연주하는 선율을 들어보라.
제2악장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Allegro Con Grazia)는 복합 3부 형식의 악장이다. 5/4박자의 러시아 민요 스타일이다.
5/4박자의 불안정한 느낌과 경쾌하게 흘러가면서도 불안한 어두움이 밑에는 깔리고 있다.
제3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는 스케르초(Scherzo)와 행진곡이 합쳐진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그러나 이 3 악장은 매우 명랑하고 쾌할하다. 삶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악장이다.
이 3악장은 제 4악장의 깊은 어둠, 절망과 삶에 대한 체념을 위한 극적인 대비이다.
제 4악장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 – 안단테(Finale. Adagio Lamentoso)는 자유로운 3부 형식의 악장이다.
시작부터 깊은 탄식과 허무함을 드러내며 전개되어 클라이맥스를 이룬 뒤 코다에는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죽음 직전에 놓여 있는 사람만이 갖을 수 있는 감정의 어두움인가?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삶에 대한 기억과 희망의 불꽃이 조용히 사라진다.
개인적인 추천 음반은 아니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예브게니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의 1960년 녹음이 불멸의 명연이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베를린필의 1976년 녹음도 므라빈스키의 연주에 비견할 만한 명반이며, 키릴 콘드라신과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녹음도 명반이다. 레너드 번슈타인의 뉴욕필 연주도 또한 명반인다.